매일읽기 52 기타 2020. 4. 27. 22:52

나부터도 모셔 오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간절하게 '네 차를 타고 네 집에 가고 싶다'는 엄마의 사인을 눈치 챘으면서도 착한 딸 노릇을 해보려는 내 마음을 극구 외면했다. 모셔온다 해도 엄마를 집에 가둬놓는 거나 마찬가진데 뭐. 삼시세끼 신경쓰랴,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며 말 걸기를 고대하는 모습이 생각보다 보기 힘겨운 걸. 혼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집이 없다면 엄마나 나나 남의 집에 사는 것 같아질 테고 징역살이가 되는 걸.
매일매일 혼자 방 안에 갇혀 있는 노인들이나 그 노인들을 두고 자기 삶을 사는 자식들이나 누굴 탓할 게 아니었다. 누가 학대할 마음으로 부모를 붙잡아 두겠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을 괴롭히려고 숨 쉬고 움직이겠는가. 한 공간에 다른 존재 둘이 갇혀 살다보면 둘 다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존재가 존재를 미워하게 되는 것.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상대를 괴롭히게 되는 게 부모 자식 간이라고, 엄마와 딸 사이라도 다를 것은 없다. 하물며 물고 빨 정도로 서로 사랑하는 것도 아니라면. 인연의 빨간 끈을 따라 그저 내 엄마가 되고 내 딸이 되어 태어나 서로 오래 너무나 다르게 살고 있었다면. 그 오랜 엄마라 해도 아빠라 해도, 내 자식이라 해도, 누군가 하나는 온전히 다른 하나에게 기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면 더더욱 힘들 수 밖에. 늙고 아파서 누군가의 도움의 손이 필요할 때에는 같은 집에 살 게 아니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그렇게 하게 되었다. 냉정하기가 뱀처럼 차가워 보일지라도 따로 살아야 한다고.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p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