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기 42 기타 2020. 2. 28. 22:39

농업의 길은 생각보다 극명하게 소비자와 그 맥을 같이한다. 생산해도 찾지 않으면 폐기될 것이고, 찾으면 생산은 더 넓어진다. 짧은 농산물의 유통기한도 한몫하지만, 시장에 달려있다. 집에서 밥 해먹지 않고 된장찌개도 끓이지 않고 나물을 무치는 손길이 줄어드는 한 농업의 길은 요원하다. 식당이 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만, 그들은 언제든 국적도 성분도 알 수 없는 유사재료들을 음식물에 투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몇몇 대기업들의 식품포장지 뒷면을 살펴보면 이미 시작된 지는 오래다.
<나도 땅이었으면 좋겠다>p128

매읽 읽기 41 기타 2020. 2. 27. 22:33

하루 작업을 하면, 25톤 20대 분량의 돌이 쏟아져나온다. 토심이 깊은 곳을 파서 그 돌들을 묻거나 불경지로 치워 나간다. 저 돌들은 흙이 되었다가 다시 돌이 될 것이다. 괴로움이나 아픔은 꼭 치유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묻어둬도 좋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서 돌이 되었던 흙이 되었든 내 삶의 토양이 될 터이니.
<나도 땅이었으면 좋겠다>p122

매일 일기 40 기타 2020. 2. 25. 09:05

육지에서 귀농 귀촌을 비슷하게 내려온 분들과 일을 하다보면 공통적인 부분이, 시키는 일을 제대로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는 것이다. 자기 편한 대로 하거나, 초보인 자기가 스스로를 결정한 방식으로 일하기 일쑤고, 남의 말도 잘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모습도 많다. 결국은 묻지 않아도 될 일은 묻고, 물어봐야 하거나 자세히 살펴봐야 할 일들은 스쳐 지나쳐버린다.
이런 '불행한 반복'을 몇 년 동안 육지 분들과 일하며 경험했다. 웬만하면 '농업의 현장'에서는 비농업인들과 같이 일하기 어려울 정도다. 비교적 나의 지독한 요청을 그럭저럭 잘 받아들이고 있는 친구여서, 2015년의 봄농사는 그에게도 땅이 제공될 것 같다. 물론 그가 결정한 일이지만 말이다. 초보자가 무슨 시작부터 실전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농사에 아마추어는 없다. 나는 처음이니까 잘 모르니까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실패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최선을 다해 살피고 가꾸고, 공부하며 농사지어도 될까말까한 일을, 스스로 보호할 만한 위장막을 쳐두고 시작하는 농사는 끝이 저절로 보인다.
<나도 땅이었으면 좋겠다>p115-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