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기 53 기타 2020. 4. 29. 22:20

아프고 늙는 데에도 강약의 리듬이 있다. 나름 질서 있게 오르내리던 엄마의 병과 늙음의 리듬은 이제 변화가 거의 없다. '약약' 밖에 치지 못한다. 그래도 늙는 속도가 빨라져 키도 발도 쪼그라진다. 윤기 있는 붉은 살이 가파르게 뼈를 떠나가고 피부가 비닐처럼 얇아지고 찢어진다. 사람의 살이 햇살에 마른 비닐처럼 찰기 없이 메말라진다.
가을걷이를 앞두고 낡은 비닐처럼 변해버린 피부에는 반창고 하나 붙였다 뗄 때도 조심해야 한다. 피부껍질이 습자지처럼 얇게 겨우 붙어 있어 연고 묻은 일회용 밴드의 미미한 끈기마저 거부하지 못하고 딸려나온다. 어디서 부딪혔는지 모를 멍들이 엄마의 피부를 다 덮었다. 한 번 생긴 반점은 점점 넓어지고 새로 생긴 반점들이 빈 사이를 메꾼다. 분바른 얼굴 빼고 온몸에 검푸른 반점들이 그라데이션 된 것처럼 흘러 다닌다. 가만히 엄마 몸에 핀 저승꽃을 만져보려니 엄마가 어리광 피우듯 말했다. 심지어 남의 일처럼 웃어보이면서. "누가 나 몰래 자꾸 때리나 봐. 자고 일어나면 이렇게 퍼렇게 멍이 들어 있지 뭐니?"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