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기 8 기타 2020. 1. 8. 23:39

앞서 말한 '무스탕 조작 사건'으로 떠들썩할 때, 신문 보도 등에서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축적하여 진실에 이르는 것이다'라는 논조가 다시 시계추처럼 반복되어 프로덕션에서조차 연출은 좋지 않다, 되도록 삼가야 한다'는 풍조가 만연했습니다. '다시 거기로 돌아가는 건가?' 싶어 걱정스러웠던 저는 '다큐멘터리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제 모색을 그대로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다큐멘터리의 정의>입니다.
이 작품의 취재차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제 나름대로 조사했더니 1960년대가 명백하게 재미있었습니다. 연출에 대해 철저하게 자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존재를 전면적으로 내보이거나 조작을 방법론으로 승화시키는 등 각각의 연출가들이 연출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작품에서는 1967년을 보도.다큐멘터리의 분기점으로 삼아 그 무렵의 뛰어난 다큐멘터리 방송을 예로 들었습니다. 특히 <JNN 뉴스코프>의 초대 캐스터 덴 히데오가 북베트남에서 직접 취재한 증언을 토대로 영상을 틀며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뉴스 다큐멘터리 <하노이.덴 히데오의 증언>, 나리타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농민운동(산리즈카 투쟁)을 기록한 오가와 신스케의 영화 '산리즈카' 시리즈는 중립과 공평, 연출과 조작에 대해 생각할 때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무스탕 조작 사건'은 다큐멘터리에서 연출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따져 물을 좋은 기회였습니다. 객관적 사실 같은 건 실제로는 찍을 수 없다는 점을 만드는 쪽도 보는 쪽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가장 좋은 기회가 되어야 했습니다.
어쨌거나 일본인은 '다큐멘터리란 손대지 않은 사실에 카메라를 가져다 대고 진실을 찍는 것'이라는 사실 신앙이 몹시 강합니다. 반면 세계의 수많은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중에는 재현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많으며, 보는 쪽도 그에 대한 이해도가 높습니다. 그러므로 뼈아픈 소리지만 일본도 보는 쪽이 성숙하지 않으면 성숙한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을 테고, 전과 같은 발전 없는 논쟁이 다시 벌어지겠지요.
시대와 함께 갱신되어야 하는 방법론을 어떻게 해석하고 재구축해 나갈 것인가, 우리 창작자들은 지금 한번 스스로에게 따져물을 시기가 되었습니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p117-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