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매일읽기8 기타 2021. 8. 27. 22:39

나는 여태까지 내가 숙제를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냥 남이 시키는 대로 이유도 모르고 뭔가를 하는 게 싫었던 거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남들이 해서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진짜인 거다. 내방에서, 구봉이네 집 옥상에서, 골목에서, 뒷산에서, 경수네 집앞 놀이터에서, 지하철역 전시회장에서, 도서관에서, 버스에서, 우리는 함께 많은 걸 보고 느꼈다. 새롭게 배운 것도 많았다. 방학은 그러라고 있는 거 아닌가? 숙제는 그걸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그럼 뭐 하나. 이제 숙제를 같이할 친구가 없는데.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화를 내고 돌아선 구봉이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나는 분명 사과를 하려고 따라갔는데, 구봉이가 날 밀어냈어. 그러니까 우리가 멀어져도 그건 다 구봉이 탓인 거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구봉이는 내가 자기를 배려하지 않아서 화가 난 거라고 했다. 사람을 배려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반대로 구봉이가 평소에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떠올려봤다. 나는 구봉이네 집에 자주 가지 않았다. 구봉이를 우리 집으로 부르는 게 편했으니까. 구봉이는 내가 필요할 때 언제나 나타나 주었고, 맛있는 것은 늘 나와 함께 먹었다. 내가 하자고 하는 건 뭐든 다 같이해 줬다. 그런게 배려라는 걸까?
구봉이는 내가 놀려도 아무렇지 않고 때려도 안아픈 줄 알았다. 늘 웃어 주니까 걔도 나처럼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구봉이는 나를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뭘 하든 웃어 주었던 거다. 구봉이는 나보다 몇 배다 더 착하고 똑똑한 애였던 것이다.
<여름 방학 숙제 조작단, 이진하, p138-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