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읽기 51 기타 2020. 4. 27. 14:51

"징역살이야, 징역살이."
고향 집에서 아들 며느리와 같이 사는 날들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징역살이라고 말했지만 이윽고 막내딸 집에서도 똑같이 징역살이하는 것처럼 부자유하다는 것을 엄마는 알아차렸다. 딸이 며느리보다 더 다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딸도 교도소 간수만큼 모질게 닦달할 수 있다는 것을 엄마는 깨달았다. 고향 집보다 더 좁고 며느리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딸네 집에서 우두커니 앉아 해다주는 마뜩잖은 밥이나 겨우 먹고 부대끼며 사는 것이 더 나을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엄마는 더 이상 우리집에 오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권혁란>p29

매일 읽기 50 기타 2020. 4. 19. 01:05

"엄마는 내 엄마잖아." 발인 날 스리랑카로 떠나서 26일이 지난 후에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져 돌아온 다음 날, 딸이 내게 말했다.
"난 엄마의 엄마보다 엄마가 진짜 내 엄마니까. 엄마가 그 자리에 없어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엄마는 내 엄마니까 엄마가 덜 슬플 수 있는 게 나는 좋았어. 엄마가 거기서 외할머니 화장하는 거 다 봤으면 너무 슬퍼서 쓰러졌을 거야. 그건 그냥 보기만 해도 절절히 슬픈 장면이더라. 엄마는 엄마의 엄마니까 얼마나 슬펐겠어. 큰 이모는 너무 울어서 죽을까 봐 걱정될 정도였어. 엄마 대신 내가 가서 할머니 보내드려서 다행이야. 엄마는 내 엄마니까 슬픈 거 안 보게 해서 나는 정말 다행이었어"
엄마는 내 엄마니까. 위로해주듯 울면서 딸이 말했다. 발인 날부터 계속 그동안 못 운 울음이 뒤늦게 솟구쳐서 하, 넋을 놓고 울다가 여기저기 부딪혔다. 밥상에도 치다 박고 화장실 벽에도 쿵쿵 찌었다. 눈알이 빠질 것처럼 튀어나왔고 머리통이 며칠동안 우우, 하고 아팠다. 머리카락이 죄다 뽑히는 것처럼 두피가 들들 떴다. 차라리 화장하는 걸 봤더라면 나았을 것 같았다.
없어짐. 완전한 소멸. 엄마는 어디 있어? 묻고 싶었다. 오늘 밤은 12시 30분이 가장 큰 보름달이 뜬다는데 그래도 엄마가 저승(안 믿지만)에서 맞는 첫 생일인데, 아무것도 안 믿어도 그냥 옛날처럼 달구경이나 하러 나갈까. 엄마에서 엄마로 딸에서 딸로 이어지는 이 고리의 끈을 잡고 달이나 보러 갈까.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권혁란>p23-24

매일읽기 49 기타 2020. 4. 9. 20:49

듣고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다 죽을 계절, 죽기 좋은 날씨, 죽을 수밖에 없는 날들이 된다. 그러니 산 사람이 죽은 이와 작별하는 게, 누군가가 세상을 등지는 게 실은 밥 먹고 차 마시는 일과 다르지 않은 셈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라고 해도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니. 눈앞에 보이는 가까운 그 길, 언젠가는 나도 가야할 길. 아직은 살아 있는 사람들과 부고를 주고 받으며 우리는 자주 장례식장에서 인사를 나눴다.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권혁란>p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