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기 48 기타 2020. 4. 9. 17:55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강행해온 일정들과 쌓이는 업무들. 그리고 벌써 몇 번째 낙방 중인 기획서까지.
매일 그림을 그리는 일은 즐겁지만 이만하면 확실히 행복하지 않을만했다.
몇 없는 프리랜서의 축복을 오후까지 이용해보기로 했다. 마트에 가서 좋아하는 술을 사고 이제 막 튀긴 탕수육을 주문해서 받아오는 길은 강풍이 불고 벚꽃잎이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그렇게 아기 주먹을 닮은 벚꽃들과 연약하고 조심스러운 연둣빛 봄들에게 두들겨 맞는데 문득 웃음이 났다. 재밌게도 내가 귀여운 배경 위에 올려져 있는 것 같아서.
아마 오늘 술은 간지러운 봄의 맛이 날 것 같다.
<동쪽 수집, 초록과 벚꽃>

매일 읽기 47 기타 2020. 3. 27. 23:05


작업실 앞, 낡은 빌라와 회색 건물 사이에 있는 붉은 벽돌 주차장.
주차장과 그의 나무들이 해가 이동하는 시간에 따라 색을 달리하고 그림자를 이리저리 옮겨 놓는다.
주위에는 죄다 회색 건물들인데 그 사이로 솟아난 것 같은 푸른 소나무와 유난스러운 붉은 벽돌은 갇혔다기보단 자신의 존재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색 조합만 봐도 신나잖아.
맞은편의 이 풍경이 없었다면 퍽 쓸쓸했을거야.
고마워. 작은 틈, 찬란한 공간.
<동쪽수집, 윤의진>

매일 읽기 46 기타 2020. 3. 26. 22:11

어느 좋은 날
괴로운 마음에도 종종 평화는 온다.
유지하긴 어렵고 만들어내는 건 더 어려운 평안이라는 것.
그래서 언제고 필요할 때면 떠올릴 수 있도록 부족한 기억력을 총동원하여 새겨넣는 방법을 선택한다.
후회와 수치심으로 눈앞이 깜깜해지는 일이 없도록.
미워하는 날들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동쪽수집, 윤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