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작에서 깨달은 '관계성을 그린다'라는 방법을 구성의 축으로 삼기로 하고, 이를 위해 1인칭 내레이션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자신이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느꼈다는 것을 객관적인 정보로서가 아닌 개인적인 감회로서 작품 속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가장 참고가 된 것은 사와키 고타로 씨의 <한순간의 여름>입니다. 사와키 씨는 그무렵 <테러의 결산>에서 시도한 것과 같은 3인칭으로 사건을 전달해 나가는 미국의 뉴저널리즘 수법을 더욱 진화시켜, <한순간의 여름>에서는 취재 대상과 자기 자신의 관계성을 그리는 '사적 논픽션' 수법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이 방법론을 다큐멘터리로 이식하여 내레이션을 객관적인 형태가 아니라 '나'라는 주어를 명쾌하게 드러낸 형태로, 자신이 본 상대의 한측면을 한정적인 정보로서 내놓는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이는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에 맞서는 데도 유효할 것이고, 작품 자체에 대한 저의 자세로서도 성실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체를 1인칭으로 이야기해 나가는 이 '사적 다큐멘터리'가 다큐멘터리 방법론으로 가능할지 어떨지, 실험은 이후로도 저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p107-108

매일 읽기 6 기타 2020. 1. 6. 23:40

쭉쭉쭉쭉
오늘도 젖을 짠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모두 함께 젖을 짠다
모두 기쁘다
그리고 모두 슬프다
젖은 나온다
하지만 새끼는 없다
슬프지만 젖을 짠다

새끼 소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며 슬프지만 젖 짜기는 즐겁다는 복잡한 심정이 아이들 작품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은 매우 씩씩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취재하고 나서 반년 뒤 정신과 의사 노다 마사아키씨가 일본항공 점보기 추락사고 유족의 심리 치료에 대해 쓴 논픽션 <상중에>를 읽었을 때, "사람은 상중에도 창조적일 수 있다"는 대목을 보고 이나 초등학교 봄반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또 야마노우치 도모코 씨도 생각했습니다. 애도는 비통하고 괴롭기만 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람이 성장하기도 한다는 점을 새삼 느꼈습니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p086-087

매일 읽기 5 기타 2020. 1. 5. 18:20

제가 다큐멘터리에서 묘사하는 대상의 대부분은 공적인 부분입니다. 그래서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비판해도 그 비판이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시종일관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개인을 낳는 사회구조 자체를 파악하는 시야의 넓이와 깊이를 소중히 여깁니다.
무론 부수적 형태로 개인적인 부분이 보이는 경우도 있고, 취재자와 피취재자의 관계 속에서 개인적인 부분이 중심이 되는 작품도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도 개인적인 부분만 찍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부분 건너편에서 항상 공적인 부분을 바라봅니다. 그러한 시선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방송에서 묘사하는 대상이 열리거나 닫히는 커다란 차이가 생겨납니다.
'우연히 내가 카메라를 드는 쪽이 되었고 당신이 찍히는 쪽이 되었지만, 그로써 만들어지는 작품 혹은 프로그램에서 서로의 노력으로 뜻깊은 공적 장소와 공적 시간을 창출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방송이다'라는 사고방식이 만약 성립한다면, 취재자와 피취재자가 대립하지 않고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방송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물론 권력은 별개입니다. 경찰이나 정치가 등 공적 입장에 있는 사람을 상대할 때는 도촬이나 전화 도청 등도 필요하다면 해야합니다. 그로 인해 고소를 걸어오면 당하면 되고, 재판을 해서 패소해도 됩니다. 그런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는 그래도 찍어야 할 것은 찍는 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p074-075